§ 책 소개
이 책은 1888년 12월 18일 헤르만 바빙크의 깜쁜 신학교 교장 이임 강연으로, 원제는 “기독교와 교회의 보편성”(De Katholiciteit van Christendom en Kerk)입니다. 원제가 의미하는 바 ‘보편성’은 모든 것을 포괄한다는 의미인데, ‘교회의 분열에 맞서’라는 제목은 이 책을 읽어 내는 하나의 독해에 불과하기 때문에, 보편성이 의미하는 바를 축소시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바빙크가 이 강연을 했을 때의 배경으로 미루어 볼 때, 나름 타당성을 갖는 제목일 것입니다. 또 이 책이 널리 주목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금은 자극적일 수 있는 새로운 제목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독자가 가진 지평에 따라서 제목이 의도한 바, 저자가 의도한 바 이상을 읽어 낼 수도 있을 것이며, 무엇보다 자신의 상황에 알맞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의 저자인 헤르만 바빙크는 1854년 네덜란드 호헤베인에서 분리측(Afscheiding) 기독개혁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바빙크 시대의 네덜란드 교회는 개혁교회이면서 국가 교회였습니다. 즉 교회의 여러 사안들에 대해 국가가 간섭하고 통제하여, 교회가 국가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없었습니다. 특히 1816년 ‘네덜란드 개혁교회 치리를 위한 일반정관’이 제정되며, 교회에 대한 국가의 간섭이 강력해졌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총회가 거의 열리지 않았고, 또한 총회에서 교리적 문제를 다룰 수 없도록 통제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럽의 계몽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교회들 간의 신앙고백이 점점 나뉘어졌으며, 결국 1834년 분리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분리운동은 국가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신앙의 자유를 얻고 교리를 수호하기 위한 운동이었습니다. 분리운동에 동참한 교회들은 1836년 첫 총회를 열었고, 이로부터 바빙크가 속한 기독개혁교회가 생겨났습니다.
바빙크는 분리측 목사의 아들이었지만, 분리측과는 신학적 성향이 다른 레이든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싶어 하였습니다. 레이든 대학교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며, 신학적으로는 당시 현대신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신학적 경향으로 인해 부모님은 레이든 입학을 만류하였으며, 그래서 분리측 교단의 신학교인 깜쁜 신학교에 입학하지만, 결국 레이든에 등록하여 박사학위까지 마쳤습니다. 아마 이는 바빙크가 분리운동에만 머무르지 않고 더 넓은 신학적 입장을 갖는데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 후 1886년 국가와 교회와의 마찰이 극에 달하며, 애통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운동은 아브라함 카이퍼가 주도한 것으로, 1887년 네덜란드 개혁교회를 창설하여 국가로부터 교회의 독립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빙크는 이렇게 생겨난 애통측과 분리측의 통합을 이루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바빙크는 분리측 신학교인 깜쁜 신학교와 애통측의 자유대학교를 통합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이는 무산되었습니다.
이 책은 이러한 네덜란드 교회의 또 다른 분리운동인 애통운동의 출현과, 분리측과 애통측의 통합이 논의되고 있을 당시에 있었던 강연입니다. 애통측과 분리측의 통합이 여러 차이로 인해 난관에 봉착했을 때, 바빙크는 이 강연을 통해 보편성이 기독교와 교회의 본질임을 강조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는 점이 이 책의 특징(장점이자 한계)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분열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입니까? ‘우리는 의로운 사람이다’ 라고 말할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일치를 위해서 모든 것을 견디어 내기 때문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 『요한 서간 강해』(분도출판사), pp. 83, 97.
※ 참고문헌: 유해무, 『헤르만 바빙크 : 보편성을 추구한 신학자』(살림, 2004), pp. 4-105; 헤르만 바빙크, 『개혁교의학1』(부흥과 개혁사, 박태현 역, 2011), 편역자 서문, pp. 17-53; 김재윤, 「헤르만 바빙크의 교회론」『장로교회와 신학』(Vol. 10, 한국장로교신학회, 2013), pp. 146-150.
§ 출판사 서평
몸이 찢어지는 고통도 없이 서로를 배제할 수 있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일 수 있을까? 교회에 불순함이 있을텐데, 어디까지 하나의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로 여길 수 있을까? 교회의 보편성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온전히 진리의 성격을 지킬 수 있을까?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여기저기에서 종교개혁자들의 업적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며, 교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교회의 현실에 주목할 때 개혁의 필요성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진리의 수호를 위해서’, ‘교회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라는 명분하에 시행된 여러 개혁들은 거의 항상 그리스도의 몸의 분열을 수반하였다.
진리를 지키는 것과 교회의 연합을 지키는 것. 이 둘을 동시에 지켜내는 것은 어려워 보일 수는 있지만, 둘 중 하나도 결코 가볍게 여길 수는 없다. 그러나 교회의 일치와 보편성은 오랫동안 그 중요성이 인지되지 못했던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교회 일치 운동이 분열의 명분으로 자리 잡고 있기까지 하다. 일치가 상실된 오늘날에는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만으로 서로가 서로를 형제로 여기려 하지 않는다.
신학교 과정에서조차 보편성(공교회성)에 대한 교육이 도외시되는 현실에서, 기독교와 교회의 보편성에 대한 바빙크의 메시지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적용해 볼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
§ 본문 중에서
보편성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교회 개념의 폭이 넓어지거나 좁아질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와 자연〔본성〕, 재창조와 창조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는지에 따라 교회의 경계에 대한 우리 마음의 넓이가 결정될 것입니다. 교회의 보편성과 기독교의 보편성을 고수하는 것은 오류와 분열이 만연한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서문」 중에서
확실히, 후대에 발생한 교회의 모습과 같이, 확연히 정해진 하나의 조직이라는 면에서 이러한 일치를 생각한다면, 이러한 일치는 〔성경이나 초기 교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초기부터 개별 교회들 사이에는 확실한 유대가 존재했습니다. 사도들에게 있어 교회들은 하나였고, 모든 교회들은 스스로를 하나로 인식했습니다. 사도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지역 감독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모든 교회의 감독이었습니다.
「I. 보편성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중에서
교리와 교회의 발전은 서로 손을 맞잡고 일어나며, 서로가 서로를 촉진시킵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보편성이 퇴보하는 것은 교회의 보편성이 퇴보하는 것과 나란히 일어납니다. (…) 우리는 개신교의 입장에 서서 더 이상 이러한 일치에 대해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오직 하나의 교회만 존재했던 시기에는, 사람들이 교회의 분열은 그리스도 그분 자신의 분리라고 굳게 믿었으며, 그렇게 믿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II. 교회사 속에서 이해된 보편성」 중에서
우리는 분파가 되어서도 안 되며, 분파가 되기를 원해서도 안 되고, 진리의 절대적인 특성을 부인하지 않는다면 분파가 될 수도 없습니다. (…) 교회의 분열이 죄라는 인식을 이제는 그 누구에게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 다양한 신앙 성향을 초월하는 보편적 기독교는 없으며, 오직 그 다양성 안에 현존합니다. 단 하나의 교회가 아무리 순수하더라도 보편교회와 동일하지 않은 것처럼, 단 하나의 고백이 하나님 말씀에 따라 순수하게 다듬어졌다 하더라도 그 자체를 기독교의 진리와 동일시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무리만을 유일한 그리스도의 교회로 간주하며, 홀로 진리를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교파는, 나무에서 잘려진 가지처럼 시들어 죽고 말 것입니다.
「III. 보편성이 오늘날 우리에게 부여하는 의무」 중에서
§ 저자 소개
• 헤르만 바빙크 Herman Bavinck
헤르만 바빙크는 네덜란드 호헤베인에서 분리측 기독개혁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님의 권유로 분리측 교단의 신학교인 깜쁜 신학교에 입학하였다가, 다시 현대신학의 중심지였던 레이든 대학교에 등록하여, ‘슐라이어마허가 성경 해석에 미친 영향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라는 주제로 석사시험을 통과하였고, ‘츠빙글리의 윤리학’이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바빙크는 자유대학교 교수로 초청을 받아 수락하였다가, 다시 철회하고 프라네커에 있는 기독개혁교회의 목사로 약 1년 반을 섬기다가 총회의 결정으로 교단 신학교인 깜쁜 신학교의 교수로 임명되어 1883년부터 1902년까지 19년 간 교의학, 윤리학, 철학 등을 가르쳤다. 그 후 자유대학교에서 1902년부터 1921년까지 19년 간 교의학 교수를 지내며, 연구, 교육,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을 하였다.
바빙크의 신학은 방대하고 포용력이 있었으며, 특히 바빙크는 기독교와 교회의 보편성을 추구한 신학자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바빙크의 신학은 교회 일치에 대한 노력으로도 나타났다. 1892년 분리측 기독개혁교회와 애통측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합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깜쁜 신학교와 네덜란드 자유대학교의 통합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두 학교의 통합은 성사되지 못하였다.
바빙크는 우리나라 신학에도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 쳤다. 특히 오랫동안 우리나라 신학교에서 교의학의 교과서처럼 사용된 벌코프의 『조직신학』은 바빙크 『개혁교의학』의 축약본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주요 저작으로는 『개혁교의학1-4』(부흥과개혁사), 『개혁파 교의학』(새물결플러스, 앞선 책의 축약본), 『하나님의 큰 일』(CLC) 등이 있으며, 우리 말로 나온 바빙크에 대한 평전으로는 론 글리슨의 『헤르만 바빙크 평전』(부흥과 개혁사), 유해무의 『헤르만 바빙크 : 보편성을 추구한 신학자』(살림)가 있다.
• 이혜경 (옮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네덜란드어와 독일어를 전공하였으며, 2013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에서 네덜란드 대표단 인솔 및 통역, 2014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번역지원을 하였다. 현재 프리랜서 번역가로, KBS, SBS, EBS 영상 번역 등 여러 분야에서 번역 활동을 하고 있다.
§ 차례
서문
I. 보편성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II. 교회사 속에서 이해된 보편성
III. 보편성이 오늘날 우리에게 부여하는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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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하여
※ 원서명: De Katholiciteit van Christendom en Kerk (Zalsman, 1888)